한국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게이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게이들의 손으로 제작하는 ‘게이 컬쳐 가이드북’ 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진행 의도는 이 ‘게이 컬쳐 가이드북’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게이문화와 게이 예술에 대한 소개와 현시대 한국 게이들의 진솔한 문화와 생각을 담아보고자 기획했다고 한다.
아울러 한국 게이 커뮤니티,게이 문화의 역사에 비해 초보 게이들을 위해 체계적으로 게이 커뮤니티와 한국의 게이 문화에 대해 정리된 자료가 미비하여 현개 개별적으로 산재해 있는 게이 문화 관련 정보들을 수집, 취재, 편집하여 한국 게이문화의 현주소를 가늠해 봄과 동시에 초보 게이들을 위한 정보책자로 활용코자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게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고,더 나아가 일반 서점 유통을 목표로 한 정식 출판물 제작과 가이드 북 내용을 친구사이 홈페이지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매우 뜻깊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지역에 사는 게이들의 생활/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설문으로 통계를 위한 간략한 배경 질문 몇 가지가 내 구글 메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이 전라도 광주이고 지난 몇 차례 친구사이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점이 작용해서 그런 듯 싶다.원래는 담당과 만나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서면 형식으로 진행이 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직접 얼굴 마주보고 진행이 되는 것보다는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답변을 할 수 있으니 나에겐 이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설문은 무기명으로 진행되며,답변한 내용은 책의 집필을 위한 자료로만 활용 할 뿐,조사 내용이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신상 정보 질문만 빼놓고는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이 없을 듯 해서 여기에 올리고자 한다.갠적으론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말한 것이라 다소 객관적인 부분이 결여되는 점 미리 언급을 하니 무리한 태클은 사양하는 바이다.
그럼 질문과 답변 내용은 이렇다
길어서 접었으니 궁금하면 보고 다시 닫기 바란다.
펼쳐두기..
■ 지역에 사는 게이들의 Life style 설문 조사
1> 지금 거주하는 곳? 그 곳에서 얼마나 지냈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현재 69년생 마흔 둘이며 형제자매에 장남이고 전라도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서울로 상경하여 2~30대를 보내다 30대 말쯤 전라도 광주로 내려와서 살고 있습니다.직업은 생략.
2>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특징이 있다면?
예전에 비해 각종 문화·예술 행사도 다채롭게 열려 다양한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많아져서 굳이 다른 곳을 가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어서 좋은듯 합니다.사람들도 예전 폐쇄적인 사고 방식에서 개방적인 오픈 마인드로 점차 바뀌어져 가고 있고요.
허나 여전히 성적 소수자에게 향하는 시선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겉으론 이해한 척 하는지 모르겠지만 속 마음은 빗장을 굳게 닫아 걸고 있어서 이런 분위기에 게이임을 커밍했다간 친구 관계나 사회 생활 하는데 상당한 곤경에 처할 수 있는 건 자명한 일이고요.일례를 들자면 서울 지역의 대학 교내 성소수자 모임이나 동아리가 있어 오픈하고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전라도 지역의 대학교에서 성소수자 모임을 오픈하고 커뮤니티를 하는 것은 극심한 진통에 시달리고 온전한 정신으로 학교 생활 하기가 힘들어 지리라는 걸 누구보다 학생들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다른 이들이 게이임을 의식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위장을 하고 다닙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도 이러할진 대 사회 생활하는 성인들은 오직 할까요? 그래서 모든 성인 게이들이 그렇지만 내 자신도 일상사와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행동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처세술로 살아가고 있답니다.일상생활에서는 성실하고 매너 좋고 남자답고 마음씨 곱고 그리고 상식적이고 건전하고 합리적인 인간관계요.그런 일상 사의 모습을 결단코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행동으로 연장 시키지는 않죠. 주변에 그 어느 누가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행동을 이해하겠어요?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지만 고지식한 가치관과 사고는 여전히 팽배해 있는 시골 도시이기 때문이죠.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 정체성을 은폐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늘 긴장하게 되는 현실이 한편으론 역겹기도 해서 어쩔땐 모든 걸 정리하고 환경이 나은 외국으로 가 고픈 맘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방의 대도시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이나 성인들이 즐길 거리가 모여있는 곳은 몇 곳으로 한정이 되어 있어 그 곳을 몇 시간 배회하다 보면 자신의 지인들을 한 두 명이라도 꼭 만날 정도로 현저히 좁습니다.그렇기에 레즈비언이 아닌 게이 남성이 비슷한 나이 대면 모르겠지만 나이 차가 있는 애인을 만나서 그런 곳에서 길거리 데이트를 즐긴다는 건 어지간한 마음으론 하기가 힘들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에 지인들이 시선이 닿지 않는 그런 곳과 또 자신의 생활 공간과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그리고 서울처럼 종로 일대나 이태원 일대처럼 일반인들의 시선에 꺼리낌 없이 게이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소위 말하면 열악하고 음침하기 이를데 없는 몇 군데 가라오케,게이빠,시설이 최악인 게이 휴게텔과 게이 사우나 한 곳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무리 열악하고 음침하기 이를 데 없을지라도 그 공간은 광주 지역의 게이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공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 곳은 게이들이 그들의 성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교류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함으로 인한 중압감과 피곤함을 풀고 해소하는 공간으로서 기성세대의 게이들이 만들고 지켜낸 소중한 공간이겠죠.만약에 그 공간이라도 없었다면 시골 도시 광주에서 게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 까라는 생각도 나름 해봅니다.
3>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기 시작한 때는 언제? 어떻게? 당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국민학생 5학년 시절부터 여자애보다는 남자애한테 관심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사춘기가 지나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군복무를 할 때도 이성보다는 귀염틱한 동성 친구 혹은 친척 사촌에게 향하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그때는 자연스럽고 짙은 우정 관계로만 정리를 했고,단순한 호기심으로 애써 치부해버렸죠.
그후 22살 풋풋한 초반에 서울에 올라와 퇴계로에서 120CC 오토바이로 가스 배달을 하는 가게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물론 입에 풀칠하고자 한 것도 있었지만 학창 시절부터 동경하는 바이크를 몹시도 타고파서 그런 이유가 컸었죠.그 당시 무겁고 힘든 가스 배달이기에 다른 배달보다는 벌이가 좋았읍니다.그래서 그런지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위 발라당 까진 날라리끼가 있는 아이들이 손쉽게 일을 했다가 자주 그만두곤 하였죠.
그렇게 난 가게 구석 쪽방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숙식을 하며 힘든 가스 배달을 하게 되었는데 한 곳에서 2년 가까이 있었죠.그러면서 자연스레 동종에 종사하는 또래들과 동생들을 알게 되어 친분을 유지하게 되었고요.헌데 거기서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낸 두살 아래인 귀염틱한 동생에게 동생 이상의 감정이 유발되어 고민에 빠지면서 이게 뭔가 하는 의심이 내 자신에게 점차 들기 시작했답니다.자라면서도 이성에게 느껴야 할 감정을 또 동성의 동생에게 느껴졌으니 가히 심각할만 하죠.
그러나 동성애자 누구나 그랬듯이 어릴 때부터 이성애만이 옳다고 교육을 받아왔었고... 아니 그것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었죠.가정이든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당연하고 자명한 것이었으니까요.가끔 영화나 소설책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던 '호모' '동성애'라는 단어는 혐오, 정신병자, 별종 인간, 변태, 죄악 등의 단어와 같이 등장해서 그것은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었죠.
그래서 난 그때도 완강히 거부하고 아닐거라고 강하게 부정을 하였죠.어릴때도 학창시절에도 군복무때도그랬지만 당시엔 지금처럼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었고 또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못했으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죠.(기억을 더듬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아이를 만나서 알고 지낸게 5년 정도 되었던 거 같은데 그 당시 그 아이는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는데 그 아이곁에서 사귀는 여자 친구를 전혀 보지 못했다.확신할 순 없지만 그 아이도 아마 게이 성향이 있었던 듯 하다.만일 그 아이가 게이가 맞다면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날 배달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얼핏 퇴계로에 있는 극장과 종로 탑골 공원을 가면 호모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종로는 솔직히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가게에서 가까운 퇴계로의 그 극장 주위를 한동안 배회하고 다니다 급기야는 묘한 호기심과 충동으로 용기를 내어 표를 끊고 드디어 떨리는 마음과 부푼 가슴,두려움을 간직한 채 그 곳을 방문했답니다.
그러나 야릇한 눈길,무표정한 얼굴,끼 가득한 몸짓의 40~50대 어른들이 극장 통로에 서 있고 화장실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걸 접했는데 막상 접하고 보니 그들은 웬지 나와 다른 딴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이질감이 느껴져 반가움이 아닌 두려움과 충격으로 지레 겁을 먹고 오줌이 마려워도 감히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좌석에 웅크리듯 앉아 있다가 영화 스크린에 투사되기 시작한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이내 뛰쳐 나와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날 밤부터 극장에서 본 그 남자들이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몸서리쳐지는 복장을 하고 무표정한 얼굴과 쾽한 눈빛으로 시커만 꼬챙이와 시퍼렇고 커다란 낫을 들고 나타나 나를 죽일듯이 쫒아오는 무시 무시한 꿈을 꾸게 되어 가위에 심하게 눌려서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기도 하고 혹시나 그런 꿈을 또 꿀까봐 잠을 설치기도 하였읍니다.너무 무서웠죠.그래서 그 충격과 절망감으로 말미암아 아마도 동성애의 생각을 한동안 확 달아나게 만든 거 같아요.
그 이후 24살 뜨거운 여름이 시작될 즈음 배달일을 그만두고 구로 공단에 있는 고향 친구네 단칸 월셋방에서 얹혀 살면서 두 살 위 고향 형 따라 집 짓는 공사장에 잡부(노가대)일을 하게 되었죠.주말에는 친구 고향 마을 형동생들이 자주 놀러와 어울리며 놀았는데 그 중에 3살 어린 후배에게 관심이 갔답니다.그러나 내면 깊숙한 곳은 여전히 강하게 부정을 해서 그때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죠.
그러던 주말엔가 목욕을 할려고 구로공단역 앞 사우나를 가게 되었죠.목욕을 하고 졸려서 어두컴컴한 휴게실에서 잤는데 시간이 좀 지나 글쎄 묘한 느낌이 들어 살며시 눈을 떠보니 어떤 남자가 옆에 바짝 누워서 내 거기를 만지고 있었던 거에요.순간 몸이 얼어붙듯 바짝 긴장이 돼어 당황을 했지만 그러나 거부를 하지 않았어요.마치 그런 행위를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이 파르르 떨었고,그런 반응에 그 남자는 더욱 밀착해서 적극적으로 탐닉을 하고,끌어 안기도 하고 그리고 오랄을 하고...행위가 끝난 후에 그 남자는 몸을 씻으러 가고 뒤이어 나도 씻은 후에 사우나를 나왔죠.
학창시절 호기심에 친구나 사촌과 할때 느낌과는 차원이 틀린 오묘하고 몹시도 흥분된 기분이었고 충격적이라 너무 정신이 없었죠.근데 몸을 씻고 나갈려고 옷을 입을 적에 반대편에서 그 남자가 야릇한 눈길로 연신 흘깃 흘깃 쳐다 보는데 그때 비로서 정신이 번쩍 드는거에요.그 남자는 40대 초 쯤 되어 보이는 아담한 체구에 좋은 인상을 가졌으나 무표정한 얼굴과 야릇한 눈길은 예전 극장에서 봤던 서 있는 남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웬지 정말 싫었어요.그래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눈길을 피했고 강하게 외면을 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분이 네 다섯 걸음 유지를 하고 계속 내 뒤를 따라옴에 내면 깊숙한 곳에 강한 부정이 솟구쳐 올라와 주위 시선이 괜히 의식이 되고 또 이 광경을 아는 사람이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돌아서서 그 남자분에게 인상을 쓰고 욕을 해댔읍니다."씨발놈아!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정상이란 말이야" 하며 소리치곤 도망 가다시피 냅다 뛰었읍니다.두려웠죠.한참 뒤에 돌아보니 따라오지는 않더군요.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엔 그 사우나를 갈 수도 없었고 한동안 그 사우나 주위를 피해서 다니기도 했고,목욕을 할때면 멀리 떨어진 다른 목욕탕으로 갔었다는...참 어처구니 없는 생각과 행동이었지만 그땐 그럴수 밖에 없었어요.그런데 그 남자의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나고 야릇한 흥분에 젖어 몸이 반응을 하면서 이젠 정말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내 자신이 그 혐오스런 '변태 호모였구나' 하는 의심을요.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심한 절망감에 빠졌죠.
일상사를 방해할 정도로 고민에 빠졌지만 근데 너무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했읍니다.그냥 단지 몸만 반응하는 정도..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사랑은 이성과 하는 것이다라는.그리곤 그 손길의 흥분을 경험코자 틈만 나면 여러 사우나를 들락거리며 몸을 맡겼고,그러다 스물 다섯살 즈음에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와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편안한 사이로 발전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 그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귀자는 적극적인 대쉬를 해왔지만 그땐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죠.그래서 연락을 끊고 3개월여 동안 멀리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허나 그에게 향하는 감정이 진심임을 깨닫고 나서 결국은 그와 사귀게 되고..그 이후로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 들이고 인정을 하기 시작하였읍니다.그래도 한편으론 끈임없이 늘 확인을 하는건 계속 되었지요.이성애 감정을요.제발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히 원하면서 말이죠.
4> 커밍아웃을 했나요? 했다면 어느 정도까지? 커밍아웃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서울에 살적에 고향 깨복쟁이 친구 한 명과 광주에선 작년 5월쯤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한살 위 형에게 했고요.그리고 가족중엔 같이 사는 남동생만 우연히 알게 되었지요.
고향 친구나 형은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이고 사람에 대한 훈훈한 정과 배려에 남달랐던 사람들로 늘 감동을 시켰던지라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따뜻히 안아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죠.그리고 제 자신 커밍아웃 할려고 마음먹기까지 그네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 아닌척하며 매번 알아봤을테고.그렇다해도 내 성정체성을 밝히는 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워요.
더욱이 커밍아웃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내 존재가 다시 시작되는 거라서 커밍아웃후에도 그네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이전처럼 계속 좋은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런지에 대한 수십번 아니 수천,수만번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드디어 용기를 갖고 말을 하게 되죠.하지만 막상 면전에 대고 입을 떼려고 해도 '난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해...동성애자야'라는 그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죽을 죄를 고백하듯 식은 땀이 흐르고 온몸을 파르르 떨며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사연을 꺼내는 고통의 시간 십여 분 그리고 나의 오감을 집중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그네들의 얼굴 표정과 입에서 떨어지는 말들을 보고 듣는 시간 십여 분은 꼭 빛과 어둠의 경계선을 살얼음 걷는 듯한 느낌이었죠.
"쉽지 않는 결정이었을 텐데 나를 믿고 고백을 해줘서 정말 고마워" 와 더불어 "근데 내 옆구리는 찌르지 마라" 하며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그네들의 말을 듣는 순간 그제서야 긴 어둠의 끝에서 빛으로 나온 사람처럼 평안해지고 안정감을 되찾았지요.그 이후 그네들은 이전처럼 친밀하게 똑같이 대해준건 물론이고 나에 대한 배려심이 한층 더 깊어졌으며 내 자신도 그네들을 대하는 맘이 더 진실 되어지고 애틋해졌죠.
그리고 남동생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할 때 놀러왔다가 그 당시 얼마동안 사귀다 헤어진 아이가 집착한 나머지 집에 찾아와 혼자 있는 친동생이 내가 만나는 사람인줄 오해하고 얘기를 하게 되는 바람에 알게 되었지만 무조건 딱 잡아떼고 얼버무리고 넘겼는데,광주에선 내 방 컴퓨터에 블로그와 싸이 홈피를 접속한 상태로 켜둔 체 밖에 나가는 바람에 동생이 전원를 끄다가 보게 되어 확실히 알게 되버렸죠.
근데 남동생은 너무도 이상하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더군요.그냥 그러려니 하는거에요.한편으론 알아버린게 오히려 잘됐구나 하는 안도감과 또 한편으론 피를 나눈 형제가 맞을까 하는 정말 무심한 동생이라고 생각했죠.그래서 나도 모르게 동생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에 과민 반응을 보이며 마음의 벽을 쌓아놓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답니다.근데 최근에 동생 절친중 커밍아웃한 나와 같은 동성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물론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아이였고요.그 말을 듣고 내 자신이 참 우스워지고 한심스러워져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지금까지 동생은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배려를 한 건데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끙끙거리며 앓고 있었던거죠.어쩐지 예전에 사귀다 헤어져 한참 힘들어 할적에 오히려 날 위로를 해주고 이해를 해주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되려 동생이 이상스럽다 느꼈다 했어요.혹시 동생도 이쪽이 아닐거라는 엉뚱한 생각을요.왜냐하면 틈만 나면 독신으로 살고 싶다고 그러고 그런데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는 걸 듣지도 보지도 못했거든요.근데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죠.누가 동생이고 형인지...참 소심한 형이에요.그쵸?
5> 커밍아웃,게이 친구 만나기,연애 등을 하는데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있다면?
커밍아웃의 어려움과 불편함은 앞서 말했던 2~4번 답변을 참고하면 되겠고요.
게이 친구 만나기에 관해서는 예전 포스팅(http://nalrari.textcube.com/108)에도 언급을 하였지만 40대가 되어서야 깨닫고 다음 이반 모임 카페나 동성애인권단체 '친구사이' 혹은 이반시티에 친구 찾기 글도 올려보는 등 내 딴에 무던히 노력을 하였지만 이 나이에 진정 마음이 통하고 서로 존중해 줄 수 있는 편한 게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연인을 사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걸 실감 하였읍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이 친구라 함은 순도 99.9% 아니 100%의 게이로 양성애자(바이)도 아닌 또 이성애자와 결혼하여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서로에게 아픔을 안겨주는 유부 게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 팩터에 게이임을 자각하고 평생을 게이로 살고자 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친구사이'엔 동갑 또래가 없고,한 두살 터울이라 해도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기에 일시에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는 게 어렵고,하물며 이반 모임 카페라던가 이반 시티에선 순도 100%의 게이가 드물더군요.혹시라도 있으면 친구는 그냥 친구일뿐인데 육체적인 관계도 같이 원하는 가치관이 나와는 다른 게이도 적지 않게 있어서 꽤 실망을 했답니다.어느 한쪽에서 부담을 주면 결국 그 관계는 깨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이치인데 말이죠.
연인을 사귀는 것은 아직까지 큰 어려움이 없는 듯 해요.그렇다고 내가 잘난게 아니고 외로움을 좀처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끊임없이 사귀고자 하는 노력 덕분에 그런 듯 해요.내가 진정 원하는 이상형은 사실 찾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고요.그래서 내가 원하는 기준에서 벗어난다 해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게 잘 웃는 그리고 상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나 배려심이 있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대쉬를 하게 되는거 같아요.
그렇다고 나도 사람(?)인데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겠죠.^^ 왜냐하면 외모가 어느 정도 끌려야 그 다음 단계로 진전이 되는거니까요.그리고 연애를 할적엔 고지식한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지역이든 행동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감수를 해야겠죠.그래서 당연히 일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요.
길거리에서 키스는 물론이고 손을 잡고 걷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하고,찻집이나 식당에서 차나 밥을 먹을때도 눈치를 봐야 하고,심지어는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모텔에 간다해도 될 수 있으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시선이 따갑지 않은 무인 모텔을 이용하게 되는 등..한편으론 무인 모텔도 감시용 카메라가 있지만 우리에겐 그런 장소라도 있다는 게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그외엔 연애를 할 적에 별 어려움은 없는 듯 해요.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자기 검열을 스스로 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게이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좀 대담해지고 아랑곳 하지 않는건 없지 않아 있는거 같아요.여기에 비교해서 그렇지만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을요.근데 연인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데 그다지 어렵지 않는데 커밍아웃은 이제 두 번 했지만 하면 할수록 두려워지고 꺼려지게 됩니다.
6> 자신이 게이임을 인식하고 커밍아웃하는 데 있어서 지역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지역적인 특징이 많다고 볼 수 있읍니다.특히 시골에서 태어난 게이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입니다.저 역시 태어난 고향이 큰 도시가 아니고 시골 동네인지라 웬만하면 한 집 건너에 친인척이라는 혈연으로 얽혀 있고 씨족으로 설켜 있어 남의 일을 남 같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남의 말을 예사로 하기 마련이라 입소문이 셉니다.시골 동네의 '발 없는 말'은 천리 길도 금방 간다잖아요.아마도 손바닥만한 시골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모든 소식은 사람들의 입심을 타고 인터넷보다 빠르게 전파될 겁니다.
외가댁 혹은 친가댁 친척들과 그리고 부모님과 저를 포함한 모든 형제들이 시골을 벗어나 생활을 하고 있을지언정 선산에 모셔둔 조상님들이 거기에 있고 또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잘못 커밍아웃을 하여 아우팅을 당하게 된다면 사생활 보호가 안되는 시골에선 삽시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거란 건 말하나 마나입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 결국엔 가장 큰 불이익은 부모님께 돌아온다는 게 문제인거죠.고지식한 부모님들인데 그런 말을 듣는다면 어찌 되겠나요? 내 자신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게 무슨 죽을 죄 지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게이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게이보다는 커밍아웃이 더더욱 힘들 듯 싶군요.특히 3~40대가 지나서야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하는 게이는 더더욱 그렇고요.물론 어렸을 적에 성정체성을 오픈한 게이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7> 게이 커뮤니티에 나가고 있나요? 언제부터?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는지?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술을 마시는 걸 원체 좋아하지 않아서 이반시티나 이반 모임 카페에서 번개 모임이 주로 술과 연관되어 있어서 솔직히 관심이 가질 않았읍니다.미술 전시 관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시 관람이나 혹은 그외 문화적인 모임이었다면 갔겠죠.그래서 게이바도 잘 가지 않았고요.서울에서도 그랬지만 2년 4개월 광주 생활에서도 예전 사겼던 파트너 게이 친구들을 게이바에서 주로 만났기에 덩달아 따라서 간게 한 두 차례뿐.그리곤 단 한 번도 가질 않았지요.
이반 모임 카페도 최근 몇 개월전에 가입해서 그저 온라인 활동만 하지 오프라인 활동은 하지 않았습니다.목적이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진실된 친구를 만나기 위한거라서 그외 모임이 있어도 참여치 않았습니다.그런데다 전라도 지역 모임은 거의 없다시피 하더군요.설령 있다고 해도 나이대가 2~30대가 주를 이루는지라 40대인 난 웬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할 듯 싶어서 솔직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요.
꼭 '친구사이' 가 아닐지라도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어디든 오래전부터 참여하고픈 마음이 있었어요.왜냐하면 다른 모임보다는 인권운동단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게이들은 오픈 마인드일 것이고 성정체성이 확실히 확립된 인증된 사람들이라 알아서 나쁠건 없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죠.
그렇다해도 처음에 문 두드리는 게 여간 쉽지 않았죠.또 모든 인권운동단체가 서울 지역에 모여 있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요.사이트 온라인 회원 가입을 해놓고도 그저 눈팅만 1년 했고요.용기내서 오프 모임을 참석한 것도 최근 5개월 전 부터 한 달에 한번씩 하는 정모에 몇 번인게 고작이에요.
그래서 게이 커뮤니티에 자주 나간다고 볼 수 없겠죠.
8> 게이 커뮤니티에서 주로 하는 일은?
7번 답변에서 말했다시피 슬프게도 전혀 없습니다.
9> 애인(친구)은 주로 어떻게 만나나요? 애인(친구)을 만나는 방법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구야홈 동성애 강좌중 "게이 커뮤니티(만남)에 대해" 란 글을 가져와 단락을 임의로 바꿔서 인용하겠다.
..........동성애자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활성화된 건 불과 몇 년전 부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각 인권단체를 비롯해서 인터넷을 통한 카페 활성화, 철저히 독과점 혜택을 누리는 게이들의 포털 사이트인 이반시티 사이트,채팅을 통한 수많은 모임과 미팅 주선,각 대학의 모임,상업적인 동성애 잡지의 발간,게이빠들의 고객의 취향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로의 전환 등 상당한 발전를 하면서 한층 더 성숙되었다.
이러한 모임등으로 인해 기존의 게이 극장,게이빠,게이 사우나,터미널,공원 등등 음성적이고 열악한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불가능했던 동성애에 대한 성정체성을 비롯해서 동성애와 관련된 정보나 지식들을 제공해주고,성 행위 지향적인 분위기를 탈피하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함으로서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하여 긍정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그 불과 몇 년전은 동성애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과 공간이 극장이나 게이빠 혹은 사우나,터미널,공원 등으로 한정되어 있고,그 공간 자체도 숨겨진 형태였다.모든 동성애자들이 그러한 음성적인 형태의 게이 커뮤니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게이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선택의 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공간,그 방법 아니면 그 어디서도 동성애자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음성적인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고,그 숨겨짐의 특성상 성적 접촉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그러한 이유가 이성애만이 절대시 되고 동성애는 변태요, 반 사회적이요,일종의 정신병으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그 누가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할수 있겠는가?
사회가 동성애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드러나면 사회적 매장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누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라고 밝힐수 있으며, 같은 성향의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을수 있을까? 결국 동성애자들이 숨은 공간에서 음성적으로 성적인 접촉을 최우선으로 만남을 가질수 밖에 없었던 현상들은 동성애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동성애를 억압하는 이 사회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극장을 비롯한 음성적 게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첫 발을 들여놓는다.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이 갖는 마음은 자신의 성향을 나눌 사람을 발견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또다른 절망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떠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곳이 유일한 공간이니까. 많은 수의 남성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도 기존의 게이 커뮤니티를 비 동성애 사회,혹은 문화가 음성적이고 퇴폐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곳에서 자신과 성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빈번하게 만나고, 한두번의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다른 남성 동성애자들과 친교적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저는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티 이반시티를 안 지는 7년 정도 되었지요.그 전엔 위에 인용한 글처럼 24살부터 줄곧 사우나,극장,터미널,공원 등 숨은 공간에서 성적 접촉을 해왔답니다.처음엔 그 당시에는 게이들만 다니는 게이 사우나도 없었죠.일반 사우나 휴게실의 은밀하고 숨은 공간에서 나와 같은 성향을 나눌 사람을 발견하고 성적인 접촉을 하고 거기서 마음이 통하여 좀 더 발전하면 그 공간을 탈피해서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죠.
그리곤 이반시티를 알게 되면서 만남을 하고자 하는 구인글을 올리거나 올려진 구인글을 보고 연락을 취해서 만남을 갖고 서로 맘에 들면 성적인 접촉을 하거나 사랑을 나누었답니다.그러다 가끔 은밀하고 숨은 공간의 성적인 쾌락과 환희에 젖고 싶으면 음성적 게이 커뮤니티를 이용하곤 했었죠.하고 나서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지만 또 가게 되는 그러한 이유로 내 자신의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부정적이고 비관적일 수 밖에 없는 패배적이고 자기비하적인 절망에 심하게 맘을 다치고 또 다치고 했었답니다.
그리고 광주에 내려오면서는 솔직히 고백컨대 일반 사우나 S와 H 휴게실에서 서로 마음이 통해서 각각 만났고 그 이후엔 이반시티 채팅으로 만났고,이번엔 구인글을 올려서 작년 12월 중순에 만나 현재 ing랍니다.
10> 지역 게이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특징이 있다면?
위에서 말했지만 광주에 있는 게이빠는 한 두번 밖에 가보지 않아서 다는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성향의 게이들이니 분위기는 즐겁고 유쾌하고 또 시골이라 그런지 나름 정도 두텁다는 걸 느낄 수 있었읍니다.그리고 예전에 잠깐 사겼던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다양한 나이대의 게이들이 온다는 걸 알 수 있었고,끼리끼리 단골로 와서 성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또 다른 일행들과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교류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딘 온라인 커뮤니티보다는 게이빠의 사장과 일하는 종업원 혹은 단골 게이들의 입을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어 소개팅을 통해서 만남을 갖게 되면 훨씬 수월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그런 점은 궂이 광주 지역이 아니라도 게이빠나 동호회 혹은 모임이 있는 곳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죠.
11> 현 지역에서 게이 커뮤니티와 일반 커뮤니티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현재 일반 모임으로는 고향 친구들과 정치 그리고 미술 관련 모임과 일적인 모임이 있읍니다.그런데 현 지역에서 제가 참여하는 게이 커뮤니티 모임은 아쉽게도 아직 없군요.그래서 차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12> 게이 커뮤니티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가기도 하나요? 어떤 커뮤니티? 주로 서울의 어느 지역?
종로에 있는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에 몇 번 간 거 외엔 없읍니다.
13> 서울에 있는 게이 커뮤니티에 가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궂이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에 가입해서 오프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다른 모임보다는 인권단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게이들은 긍정적인 마인드일 것이고 성정체성이 확실히 확립된 인증된 사람들이라 알아서 나쁠건 없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또 그들의 삶의 방식과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게이들의 보다 나은 인권을 위해서 투쟁하는 마음에 동화되고 싶고 그들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는 계기가 되고 싶어서요.
14> 서울과 현재 지역의 게이 커뮤니티/문화의 차이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과거엔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광주엔 이렇다할 게이 커뮤니티가 없읍니다.물론 다음 카페에서 활성화된 모임에서 지역 게시판이 있을지 모르나 40대인 내가 꺼리낌 없이 참여하게 될 커뮤니티는 보지 못한 듯 합니다.
15> 서울에 있는 게이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쉽게 자주 참여하지 못하여 그 단체의 게이들과 친목을 도모하지 못하는 거 빼곤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우선은 내 자신이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하고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하는 거니까요.
16> 서울의 게이 커뮤니티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아직 까지 특별한 게 없읍니다.다만 서울의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가 좀 더 활성화 된다면 각 지방 대도시권에 연계된 동성애 단체가 있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예를 들자면 정당의 지방 조직인 지구당처럼요.그 지구당은 정치권에서는 각종 비리와 부패의 근원 지였지만 말이죠.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겠죠.수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대표 격인 어느 한 사람은 상당한 희생을 각오 해야겠죠.
궁굼한게있는데요..
답글삭제혹시
남산주위에있는 게이들만 가는 사우나가있다해서요..
혹시 아세요?
대접좋음
답글삭제누구나가입가능
http://hanboy.sm.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