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영 살롬 유스호스텔에서 2009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주최하는 기갈발광(發光) 워크샵과 종로 3가에 있는 사무실에 처음으로 다녀왔다.친구사이에 대해 블로그 방문자들 중에 모르는 분들이 있을지 싶어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친구사이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로서 1994년에 결성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이다.지난 15년 동안 친구사이는,고민하고 방황해야 했던 동성애자들이 자긍심과 공감의 언어를 얻는 사랑방 역활을 해 왔으며,이성애 중심적이고 성별 고정적인 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서 싸워 왔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사이 워크샵은 매년 가을에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즐기는 가을 여행으로 게이 인권과 친구사이를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 데,
올해 4번째로 열렸던 기갈발광 워크샵에선 "게이의 감수성으로 세상을 향해" 라는 타이틀로 30여 명이 참여하여 토요일 오후 4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3가지 프로그램을 각 1시간 30분씩 조별로 나누어 토론하고 공유해 보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였다.
기갈발광Ⅰ "친구사이 소명헌장 만들기"
게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욕구를 바탕으로 친구사이가 어떤 꿈을 꾸고,무슨 이유로 존재하는지를 진심을 담아,오래 참여한 회원이건 새롭게 시작하는 회원이건 상상력을 발휘하여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갈 있게 표현하여 친구사이가 추구하는 가치,나아갈 방향을 '소명헌장'으로 만들어 보는 유익한 프로그램였다.
기갈발광Ⅱ "집단지성 고민해결방"
게이라면,또 친구사이 회원이라면 가질 만한 가슴 시린 고민 이야기를 나누고 이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는데,각 '고민조' 별로 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 해결책을 답변서에 담아 공유해 보는 시간을 갖았다.이 시간에는 준비팀원들이 미리 준비한 고민은 피부 트러블,성적 정체성,다이어트,엣지 살리기 등 4가지였다.
기갈발광Ⅲ "오우,퍼포먼스"
참여한 친구사이의 회원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확실한 방법,재기발랄하고,미적이고,능청스럽고,재미나고,삶의 고뇌가 묻어나오는 내용으로 퍼포먼스를 구성해 보는 시간을 갖았다.그 중에서 기억에 남고 감명 깊었던 두 가지를 든다면 이렇다.
-에이즈(HIV)감염자를 호모포비아의 무관심 혹은 냉대와 멸시속에서 따뜻하게 감싸주고 함께 하자는 내용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표현된 무언(無言)극은 가슴 한켠이 찡해오고 평소엔 무심결에 지나쳐왔던 것을 상기 시켜주어서 심사위원단과는 별도로 내 개인적으론 후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었다.난 그들이 자랑스럽다.
-코러스보이님이 조장으로 참신하고,능청스럽고,엣지있게 표현된,강원도 여름 유명 리조트 타운 '오션월드' 를 알부자인 어느 노년 게이가 인수하여서 '오십월드'로 간판을 걸고 게이실버휴양지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이 된 짧은 꽁트였는데,참여자 모두가 실감난 연기로 연극인이 울고갈만 하여 관중들의 뜨거운 폭소와 박수를 자아냈다.특히 잘 생긴 외모에 한 몸매하는 반대자의 연기는 실로 일품이었다.
그리고 10시 이후 참여자 모두 방안에 둘러 앉아 간단한 술 좌담회 Party "So Hot" - 그냥 즐겨! 가 준비되어 오래 참여했던,새롭게 시작하던,나이가 많든 혹은 적든 서로를 존중하며 가슴속에 깊숙이 파묻어 두었던 한맺힌 이야기들을 꺼내어 나와 같은 이들에게 부담없이 털어놓아 가슴속이 후련하고 실로 오랜만에 엔돌핀이 마구 마구 샘솟았다.
한편,중간 중간에 재미삼아 무기명 쪽지를 돌려 인기남과 섹시남,말년복남을 뽑는 자리에선 미모의 2~30대를 제치고 볼품(?)없는 40대 왕언니들이 꿰차서 중년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쁘고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 되어 밀려왔다.
난 이 날 먹은 술은 자그만치 1년치를 몽땅 마셨고,요요현상으로 체중 3kg가 불었다.그 덕분으로 일요일 역삼동 친구집에 가자마자 온몸이 파김치 되어 쓰러져 잠에 취해 사경을 헤매었고,어제,오늘 헬스장 런닝머신 벨트가 달아질 정도로 무리하게 뛰어서 온몸이 욱씬거린다.그래도 난 아름답고,우아하고,기갈있고,엣지있는 게이들과 함께 해서 너무 너무 행복하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10시에 진행이 되었던 9월 정기모임에선 신입회원 소개 및 소모임 소개와 9~10월 활동 보고와 부서별(총무국,인권팀,상담팀,홍보팀,회원관리팀,자료관리팀,교육팀,문화팀)의 보고를 들었고 10월부터 진행할 예정인 주요 일정과 마지막으로 워크샵 평가 및 정리를 끝으로 단체 사진 촬영을 끝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고 기억에 남은 워크샵을 마쳤다.
사실 친구사이뿐만 아니라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 그 어느 곳이든 재정 상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열악하다.매달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한데다 인권 활동 비용은 고사치고 사무실 임대료도 제때에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오랜 참여한 회원들이 월급을 쪼개어 십시일반으로 걷어서 운영하니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더욱이 호모포비아뿐 아니라 정권을 잡은 정치가들이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선 따뜻한 관심의 손길은 커녕 막말을 서슴치 않는 캄캄한 암흑 같은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다.그러나 이 암흑 같은 현실에서도 꼭 해가 뜰거라는 희망을 안고 모든 동성애자들을 대변하여 밝은 등불이 되어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권 단체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그릴 수 있는 미래의 아름다운 모습은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다.
게이들이여! 희망을 가져라!
게이라면 돈 만원이라도 게이인권단체에 기부하자!!
20~30대도 아니고 40대인 나..게이인권단체 워크샵에 참여하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하였다.혹시나 적지 않는 나이 때문에 순수한 맘이 자치 잘못하면 괜한 오해(파트너 만남)를 받을 수 있겠고,또한 오래 참여한 회원들 틈바구니에 끼어 점차 스스로 도태되어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전라도 광주에서 서울 구파발까지 가는 차편에서 설레이는 마음 반대편엔 뭔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하지만 정작 참여하고 나니 내가 가졌던 편협하고 고루한 생각은 한낱 볼품없는 고철에 불과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용기있게 한발 내밀어 딛고 나면 모든 게 순조롭다.작년 6월 5일에 친구사이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하여 오프라인에 참여하기까지 1년 3개월이 걸렸다.혹자는 인권단체에 참여하는 게 별거냐 하는 시선으로 아니꼽게 바라볼수도 있겠지만 내 자신이 완전하게 게이임을 받아들이고 인생의 팩터로 삼았던 점에서 워크샵 참여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의미를 부여할만 하다.
올 한 해 나에게는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또한 친구사이 워크샵에 참여하기까지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이들이 있다.친구사이 회원으로 오랜 활동을 하는, 친구사이 얼굴이자 게이코러스 합창 단원인 샌더님과 영화제작자 겸 감독이신 김조광수님이다.이 분들의 블로그를 통해서 직접 참여하고픈 마음이 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하면서 후기를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