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http://chingusai.net/
2010년 2월 9일 화요일
주옥같은 게이 연애의 108법칙
게이라이프스타일 매거진 GET 8호에서도 실린 108 법칙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조언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 연애의 법칙은 게이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닌 레즈비언에게도 해당이 된다.게이를 레즈로,남자를 여자로 바꾸면 레즈비언 연애의 법칙 그것이다.레즈 커뮤니티에서도 딱 맞는 말이라고 댓글이 주룩룩 달렸단다.
게이 연애의 법칙을 지은 임근준님은 게이 인권운동가로 국내 동성애인권운동 초창기 시절 95년 봄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지금의 동성애자인권연대)' 를 조직하는데 참여하였고,이후 수년간 성적 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앞장서기도 했으며,지금은 미술계에서 실력과 인지도를 겸비한 미술 비평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많은 자타공인 연애 전문가들의 연애 법칙은 인터넷상에 널렸고 책으로도 절찬 판매중이다.허나 이런 법칙들은 다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나온 거다.하긴 '여자(남자)에서 남자(여자)로' 단어만 바꾸면 공감된 부분이 많다.근데 공감된다 해도 거기에 억지로 낑겨놓은 것처럼 웬지 싫다.동성애자 세계에선 우리 정서에 맞는 연애의 법칙이 필요하다.근데 게이 연애의 법칙도 어찌보면 이성애자 연애의 법칙과 비슷할 수 있겠다.사실 연애 상대만 바꼈지 어차피 똑같은 사랑을 하기 때문일 테니까.
그리고 표현이 좀 거창하긴 하지만...이 게이 연애의 108 법칙은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이 싱글들을 위한,단순한 연애의 법칙를 넘어선 어찌보면 게이에게 필요한 삶의 지침이라 얘기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게이 연애의 법칙(련애박사의 고난이도 동성련애 108 법칙)>
1. 반드시 실물을 보고 고른다. (절대 온라인상의 프로모션을 두고 상상을 키우는 '초짜'적 행위로 뇌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는다.) 2. 대상이 포착되면 과감하게 종합검색작업에 들어간다. (게이바나 클럽에서는 거의 모두다 나름대로는 '멋진 남자 가면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므로 절대 인간성 따위를 알 수 없다. 따라서, 꼭 밝은 대낮에 연극적 공간이 아닌 일상적 공간에서 취하는 행실을 봐야 한다.) 3.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쏴라. 사랑 앞에서 밍기적 대봐야 상대를 짜증나게 할뿐이다.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거절당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 아니다. 좋아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밍기적 대다가 볼짱 다 보는 게 수치스런 일이다.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심어주려면 멋지게 공작에 들어가라. 우울과 소심은 상대를 짜증나게 할뿐. 4. 이태원이나 번개에서 만난 상대의 경우 그 자리에서 '쇼부'를 보려하지 마라.호감을 주고,관심이 있음을 표명한 뒤 전화번호만 챙기면 그만이다.나중에 일대일로 만나서 연애를 제안하는 것이 10배는 효과적이다. 5. 꼬실 때엔 반드시 눈을 들여다보며 꼬신다. 6. 과도하게 남자다운 척하는 것은 금물. 잠깐이면 몰라도 장기적으로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연애하려면 절대 연기하지 말아야 한다. 7. 타이밍은 연애의 전부다. 상대가 연인이 아쉬울 때 멋진 자세로(물리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앞에 쿨하게 나타나주는 것은 중요하다. 8. 게이임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자신의 게이 연인(바로 당신)도 부끄러워하는 법이다. 9.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짝사랑하는 이성애자 남자가 있는 경우, 그 판타지가 깨질 때까지 기다린다. (머릿속에서 이상화된 이성애자 오빠는 천하무적이니, 결코 내가 무찌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차라리 애인이 있는 게이를 꼬셔내기가 더 쉽다.) 10. 연애를 잘 하고, '젠틀'하게 잘(?) 헤어지는 남자라면 꼭 기억해둔다. 언젠가 나랑 사귀어도 좋을만한 멋진 남자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해본 놈이 잘하기 마련이다.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게이들은 대개 6개월 이상 사귀지 못한다. 연애를 잘 하고 있는 남자들을 주시해두었다가 쓸만한 남자 가운데 파경을 맞은 이가 있으면 적절하게 뜸을 들였다가 배고플 시점에 공작에 들어가라. 그러면 성공률 최상이다. 사실 애인이 있는 게이 남자들처럼 꼬시기 쉬운 것도 없다. 허나 독특하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시지 말라.) 11. 키스를 못하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키스를 못하면 대개 섹스도 못한다.특히 키스에서 머뭇거리는 자는 침대에서도 두고두고 '뻘쭘'해한다. 시체놀이나 할 게 아니라면, 뭐 사실 눕혀보나 마나. 12. 첫 데이트에서 섹스하면 상대가 '선수'가 아닌 경우, 대화가 단절되기나 십상이다. 스포츠 섹스 후 쿨하게 대화를 이끌어낼 줄 아는 한국인은 아직 드물다. 13. '원나잇 섹스'면 모를까 3년차 이하의 게이는 좋은 연인이 되긴 힘들다. 14. 3-4년 이상 가까이 지낸 게이 친구가 여럿인 게이는 인간성에 큰 문제가 없는, 검증된 남자다. 15. 부분적으로 커밍아웃한 게이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연애를 한다. 나를 자신이 커밍아웃한 이성애자 친구에게 정중히 소개시키는 자라면, 확실히 믿을만한 남자인 경우가 많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묻지마 연애의 경우 관계는 무책임하기 쉽고, 종종 파국은 잔인해진다. 16. 상습적인 거짓말은 거의 불치의 병이다.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게이는 가까이하더라도 반드시 거리를 유지할 것. 17. '끼떨기'를 '재수 없어'하는 남자는 대개 자신의 소녀다움을 억압하는 자들이다. 2-3년 뒤 진정한 아줌마로 거듭나는 수가 많다. 주의할 것. 그러나 새로 만난 남자 앞에서 가볍게 끼떨어보는 것은 중요한 실험이다. 18. 트라우마를 삶의 에너지로 삼는 자들은 최악의 연인이니 조심해야 한다. 19. 첫 섹스가 끝난 뒤 매너가 꽝이면 좋은 연인일 가능성은 제로다. 20. 때짜라는 데 눕혀보니 마짜거나, 마짜라는 데 눕혀보니 때짜거나, 버서타일(올)이라는 데 눕혀보니 그냥 마짜 혹은 때짜인 경우, 자기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 아니므로 앞으로 계속 의사표현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정신분석에 능하지 않다면, 오래 만날 생각은 말자. 21. 게이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하는 애인은 정작 먼저 당신 몰래 바람 필 사람이다. 22. 미모를 가꾸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남자가 게이로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23. 헤어진 전 애인들과 잘 지내는 사람은 확실히 거부 못할 특수한 장점을 지닌 남자일 가능성이 거의 100%다. 24. 게이로서의 삶을 즐길 줄 아는 남자는 좋은 연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25. 대책 없이 노는 게이는 대책 없이 놀게 두자. 26. 예술가 게이 남자가 위대한 예술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면, 그는 오로지 단기용 애인일 뿐이다. 27. PC한 페미니스트 게이는 마쵸 게이만큼이나 꽝이다. 28. '밀고 당기는' 애인은 한 남자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 법이다. 29. 게이로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인생 견적을 뽑아낸 게이는 연애견적도 잘 뽑는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인생계획에서 '주요 팩터'로 고려하지 않는 자에게 연애가 인생계획에 들어있을 리는 없다. 이 말은 그의 인생에 그대가 낄 자리가 없다는 뜻도 된다는 걸 잊지 말자. 30. 둘이서 함께 여행을 가보면 됨됨이가 드러난다. 장기용이지 단기용인지 판단할 때, 여행은 최고의 시험장이다. 31. 연애는 장기용이건 단기용이건 '바로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 깨지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32. 좋은 남자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준비된 좋은 게이 남자인가 체크해보자. 33. 일단 준비되면 남자는 꼬이기 시작한다. 34. 그러나 선택도 쉽지는 않다. 35. 미남이 아니면 미남이 되려 노력하자. 36.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더 외모를 따지는 법이다. 37. 비운의 여주인공 놀이는 절대 하지 않는다. 38.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 매일 전화하고 반드시 일주일에 한번은 섹스를 해야 연애가 무너지지 않는다. 39. 멋지게 헤어지면 전 애인들 가운데 몇몇은 나중에 언제고 다시 사귀자 제안하는 법. 40. 재활용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41. 애인의 바람은 꼭 내가 아는 이와 난다. 42. 애인이 한번 바람 폈다고 차버리면 평생 한 남자를 오래 사귈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고 만다. 43. 공개적인 다중연애는 한국에서 불가능하다. 44. 근거 있어 보이는 자신감이 외모보다 힘이 세다. 45. 개를 잘 기르는 남자는 애인에게도 잘 한다. 46. 혼자 살면 연애하기 유리하다. 47. 홀로 흔쾌히 방에 걸어 들어온 '초짜' 게이 남자는 십중팔구 방주인과 섹스하고 싶어한다. 방은 여관방보다도 힘이 세다. 48. '원나잇' 상대를 집에 들이면 안 된다. 원나잇은 집밖에서. 49. 학벌이고 재벌이고 내게 해주는 거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50. 애인의 선물은 꼭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한다. 51. 지니고 다닐 선물을 건넬 때엔 내 모습이 잘 기억될 장소에서 건넨다. 그래야 그 물건과 내가 연관되어, 물건이 '나'를 환기키는 법. 52. 오래 사귀려면 허니문 시기에 애인과 반드시 섹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다. 53. 모성본능으로 연애하는 게이와 우울한 성격의 게이는 박복하다. 54. 내가 지금 애인을 원하는 것인지 아빠를 원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자. 55. 잘 쓴 연애편지는 대단히 대단히 대단히 힘이 세다. 56. 눈알 굴리는 남자는 '안 된다'는 할머니 말씀은 100% 진실이다. 57. 양복 입은 모습을 싫어하는 게이는 거의 없다. 양복 입은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의 호감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다. 58. 양복빨에 속지 말자. 59. 한국에 있는 백인들 가운데 열이면 아홉이 닭이다. 저질 취향이 아니라면 고르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 60. 한국계 미국인 게이의 경우 마음 속 깊이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사실이야 어떻건 간에 그들은 파국의 결정적인 순간에 양키처럼 행동한다. 61. 유태인은 마마보이인 경우가 많으므로 확 휘어잡아야 한다. 62. 실은 한국애들도 그렇다.(특히 경상도 출신!) 63. 사랑한다고 서로 말이 오간 뒤라면, 사랑한다는 말은 남발해도 좋다. 64. 이미지는 글자나 말과 달리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충격적으로 추한 꼴은 제 아무리 오래된 연인관계라 해도 애인이게 보여주면 안 된다. 65. 섹스할 때 눈을 마주쳐주면 상대는 그 순간을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66. 섹스할 때 떠들지 마라. 사랑한다는 말도 여차하면 상대를 주눅들게 한다. 그냥 조용하게, 낮게 깔리는 신음이 최고다. 최악의 대사는 이런 거다: "형 어때? 좋아? 응? 좋아?" (오럴섹스할 때 눈 치켜 뜨고 상대 표정 살피는 것도 금물.) 67. 술기운에 프로포즈하지 마라. 68. 프로포즈 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NO!'할 필요는 없다. 몇 번 더 만나보고 거절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69. 애인과 함께 샤워해 버릇하면 애인이 바람 피기는 어렵다. 70. 애인이 나의 삶에 기여할 기회를 주면 애인은 새로운 차원에서 기뻐한다. 71. 단점 없는 남자는 없다. 72. 학력과 미모는 동시에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성과 미모는 함께 발현되지 않는다. 함께 발현된 경우라면... 꼭 손에 넣으시길. 73. 운전하는 꼴을 보면 싸울 때의 성격이 드러난다. 74. 진정한 게이는 리모콘을 애인에게 양보한다. 75.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지 않는 게이는 살아있는 악덕이다. 76. 행복한 삶의 태도가 행복을 부른다. 77. 몇몇 게이 남자들의 우울한 성격은 대개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다. 바뀌기를 기다리느니 토끼 대가리에 뿔나기를 기다리자. 78. 잘 키운 오코게 하나 열 애인 안 부럽다. (오코케=팩핵: 유달리 게이 남자를 좋아하는 이성애자 여자.) 79. 애인이 피우는 재롱의 연원을 상상하지 말라. 80. 음주습관이 나쁜 게이 남자는 롱런하지 못한다. 81. 스포츠 마사지를 배워두면 쓸모가 많다. 82. 향수는 최소량만 사용한다. 83. 애인문제는, 수퍼급 베테랑 게이 선배가 없다면, 이성애자 여자 친구와 상의하는 편이 낫다. 84. 소녀와 마초의 버튼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누르면, 반드시 켜진다.) 85. 심심하다고 자주 누르고 놀면 후환이 있다. 86. 게이 나이트 클럽에서 놀아 보려는데, 갑자기 눈이 따갑고, 머리가 멍하며, 테이블이 더러워서 참기 어려운 지경이라면, 이제 남편감을 찾을 때가 된 것이다. 87. 연애 상대의 펫 피브즈(체질적으로 싫어하는 것들)를 일찌감치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88. 나 자신이 펫 피브즈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애인의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지기 전에 숙지시켜야 한다. 89. 보통의 경우, 좋은 애인은 이미 숙지하고 있다. 90. 세상 사람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잘 때 붙어있기 좋아하면 여자고, 싫어하면 남자란다. 사실이야 어떻건 간에, 좋은 남자가 되려면 팔이 저려도 참아야 한다. 팔 좀 저리다고 죽지 않는다. 91. 애인과 일은 완전히 분리해서 관리한다. 92. 연인에게 일과 자신의 중요성을 비교하기를 요구하는 애인은 좋을 때엔 천사지만, 여차하면 무서운 비치로 돌변하는 법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93. 헤어진 애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아야 나에게 이롭다.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94. 도망칠 땐 확실하게. 95. 침몰하는 연애는 보통 구출하려 노력해도 구해지지 않는다. 한 달 동안 꾸준히 노력해보고 안되면 깨끗이 포기하라. 96. 못생겼으면 착하기라도 해야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97. 우울증과 달리 소심증은 연애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98. 예쁜 남자를 보는 순간 손이 나가고 있다면, 이미 뇌는 중년이다. 99. 절대 남의 연애문제에 감나라 배나라 관여하지 않는다. 언제고 나도 구설에 오르기 마련이다. 100. 애인 없는 싱글로 좋은 평판을 얻는 것 보다는,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구설에 오르는 편이 낫다. 101. 모든 남자들의 욕망은 기실 똑같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102. 종종 어떤 게이 남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나쁜 점을 다 가지고 있다. 103. 일주일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내는가를 보면 사람이 보인다. 104.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를 풀 구석이 없는 남자는 애인에게 짜증낸다. 105. 애인에게 징징거리지 않는 남자가 되려면 연애와는 별도로 스트레스를 풀 안정적인 방도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106. 모든 장애와 난관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오면 꼭! 달려가 잡아야 한다. 107. 잊지 말자. 세상은 넓고 게이 남자는 많다. 108.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검증되지 않은 인류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다. 게이로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왔는지 생각해볼 줄 아는 사람은 십중팔구 이미 행복한 '련애박사'일지니.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인터넷 공간 속 블로그 동성애 커밍아웃
■사회·문화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이다.
사회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2009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 (좌측 표 참조)결과에 따르면," 만12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의 72.3%가 ‘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은 중요하다’ 고 응답할 만큼 인터넷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매김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2007 상반기 정보화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발표한 『블로거 인터넷이용실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터넷이용자의 10명 중 4명(3,658만 명에서 40%면 1,463만 명)이 블로그 혹은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있는 블로거이며, 20대 여성과 학생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와같이 한국은 경제적 급성장과 더불어 사회·문화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그 사회·문화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인터넷이다.그리고 그 인터넷 공간 속 개인형 독립 미디어로 진화를 거듭해 가는 블로그와 일상 관련 목적으로 운영하는 미니홈피 운영자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고,인터넷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이명박의 집권과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려 인터넷의 힘으로 정치적 지향이 변했듯이 앞으로도 인터넷의 미디어 기능이 강화되면서 블로그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 속 성소수자 커밍아웃
그럼 위의 자료에 의한 1,463만 블로거중 자신의 미니홈피(약 1,100만 명)나 블로그(미니 홈피 중복 운영 포함 약 6백 만 명)에서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운영하는 블로거는 얼마나 될런지 자못 궁금하다.일반 사회에서 우리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은 직접적으로 삶과 맞닿아 있어서 대단히 어렵다.인터넷에서도 역시 그럴까?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고 일상 관련 목적으로 운영하는 미니홈피 운영자와 블로거들은 자신의 삶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성애 중심의 일반 사회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이상 역시 이성애 중심의 인터넷에서도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른 이들이 올리는 동성애적인 코드를 담은 내용의 글엔 은근하게 동조를 할 것이고,동성애를 담은 예술과 대중문화의 글을 올림으로서 교묘하고 은밀하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묘사할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그러면 신분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익명으로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중에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이들은 얼마나 존재할까?
■ 공식적인 동성애자 파워 블로거
아마도 수치상으로 볼 때는 거의 미비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통계를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약 6백 만 개의 블로그 중 우리나라에서 검색 사이트 1위인 네이버가 절반 이상(약 350만 개?)을 차지하고,나머지 250 만 개는 다음,네이트,이글루스,야후,티스토리,텍스트큐브,파란 등등이 모두 포함되는데 여기에서 성소수자임을 내세우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들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수준이다.블로그 제목이나 대문에 방문자가 알 수 있도록 성소수자임을 알리거나 혹은 포스팅의 반 이상이 동성애와 관련됐다면 모를까 단 몇 개의 포스팅으로만 가지고 블로거가 성소수자임을 헤아리기가 힘들다.
단순히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들을 제외하고 국내 메타 블로그(등록된 블로그들에서 수집한 정보를 정리하여 제공하는 블로그 허브 사이트) 1위인 올블로그에 등록하고 활동하는 블로그는 2010년 2월 7일 기준 389,242개(사이트 하단)다.사실 이 올블로그는 국내에서 영향력 있는 파워 블로거(포털 포함)는 거의 등록이 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인터넷 세상에 알리기 위해선 메타 블로그는 필수 선택이기 때문이다.파워 블로거(포털 포함)중엔 자신의 성정체성을 철저히 숨기고 활동하는 블로거가 없진 않겠지만 현재 슬프게도 공식적인 동성애자 파워 블로거는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이성애 중심의 인터넷 공간에서 인터넷 '흉기'라 불리는 악성 댓글을 견뎌내고 지속적으로 운영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트랜스젠더 고 장채원과 게이 연예인 고 김지후의 잇따른 자살에서 보듯이 악플은 얼마나 가공할 살인무기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하자.
그리고 올해 새해 1월 3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파키스탄에서 협박을 당했던 이주민이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이 소송 결과는 한국에서 정치적 박해나 인종·종교 차별 등을 원인으로 하지 않는, 성적 취향으로 박해받는 자에 대한 국내 첫 난민 인정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모두 이런 결과가 모두 국내외적으로 동성애 권리 확보 운동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또한 인터넷 공간 속 포털 사이트 동성애자 블로그 검색 등록도 훨씬 자유롭다.얼마전 혹시나 해서 다음과 네이버,네이트 등 유명 포털에 개인 블로그로서 일반 사이트 등록 신청을 했는데 쉽게 받아들여진 것이다.이전 미술 전문 블로그에서 성정체성이 모호한 블로깅으로 한참동안 고민과 번뇌에 빠졌는데 이제 당당하게 블로그 제목에 동성애자임을 표방하고 동성애를 맘껏 표현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수긍하는 것도 커밍아웃이고,나를 이해해 줄 것 같은 친구에게 말하거나,설령 친구에게 왕따를 당하더라도 친구를 속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친구에게 말하는 것 또한 커밍아웃이다.또한 익명의 블로깅이라도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고 인터넷 세상에 동성애 내용을 담은 글을 보내는 것도 인터넷 공간 속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채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한 김두진 현대미술작가가 "성 정체성은 나의 삶이고 양심인데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듯 인터넷 공간 속도 마찬가지 동성애자들이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하다 보면 그 옛날 홍길동이 살았던 시대에 낡은 봉건주의 정신이 사라졌듯이 이성애 중심주의 사고가 사라지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인터넷 세상으로 곧 도래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
커밍아웃(Coming out)은 성소수자들에게 자신감,자신에 대한 긍정,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혹자는 굳이 자신을 표현해야 하냐고 되묻지만 우리 자신을 보이지 않으면,그 어느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커밍아웃이라는 용어는 이미 사회화되었다.정치, 연예 막론하고 커밍아웃이라는 말을 사용한다.하지만 우리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은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커밍아웃으로 인해 연예계에선 홍석천이 모든 것을 잃었고,장채원과 김지후가 자살을 했다.또 군대에선 성추행을 당하고 학교에선 검열을 당한다.가족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사례다.
그리고 자신을 긍정하는 순간,원점보다 더 후퇴된 삶의 경험을 할 수도 있다.커밍아웃은 행위이지만 한 순간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다시 시작이라는 지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자신이 속한 집단,사람관계는 자신이 나이가 든 만큼 다양해지고 더 넓어지기 마련이다.일순간 우호적인 사람과 집단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화,환경을 접할 때마다 늘 되풀이 되는 고민과 압력에 휩싸일 것이다.
그런데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깨닫는 동성애자는 아무도 없다.자연스럽게 이성애자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와중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직감하게 된다.이성애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흔히 말해 일반적이다.동성애는 반대로 특수한 경우다.당사자에게도 혼란이 가중된다.확신하기까지 많은 갈등이 따르기도 한다.외부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도 발생한다.
그렇기에 커밍아웃은 쉽지 않다.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하기도 한다.그 반면 좌절의 순간과 맞닿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에 대한 긍정,존재를 표현하는 형제자매 성소수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곁에 있을 것이다.수많은 번민과 고뇌와 함께 자책에 빠졌을 동성애자들이 떨리며 내미는 손과 마음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편하게 보듬어주자.그리고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자.
2010년 2월 6일 토요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1840-1893)
http://www.tchaikovsky-research.net/
(공식 홈피)
http://www.kballet.org/ballet_info/ball_people_017.asp
(국립발레단 인물 설명)
19세기 위대한 작곡가중 하나인 차이코프스키는 게이다.그는 동성애에 대한 당시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철저히 은폐했고 이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그가 살았던 당시에 동성애는 도덕적인 문제뿐 아니라 그것을 말하거나 기록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으니 그의 인간적 고뇌가 얼마나 깊었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Pathetique)
*비창(Pathetiaue)의 뜻은 일반적으로 '슬프고 가엾은,불쌍한,딱하고 감상적인'
*비창(悲愴)[비ː-]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
곡 전체에 흐르는 절망, 우울의 감정에 의해 "비창"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곡은 그의 추모 연주회 때 재연주되어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이 마지막 교향곡 '비창' 은 그가 사랑했던 마지막 연인인 그의 조카 '봅(혹은 블라디미르 다비도프,1871/2-1906)'에게 헌정했다.이후 봅도 36살에 생을 마쳤다.사인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었다.(차이코프스키의 러브레터)
아래는 유트브에서 담아온 2003년 11월 5일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Arkady Leytush 지휘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실황 동영상이다. 그리고 각 악장에 대한 해설은 전남중등음악사랑연구회에서 발췌해 왔음을 밝힌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 (part one)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악장 (part two)
◎제 1악장 (Adagio b단조 4/4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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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의 공허한 화음을 배경으로 파곳이 신음하는 듯한 어두운 동기를 연주한다. 이것이 다른 악기에 계승되어 전개된 뒤, 제1주제의 주동기로 된다. 그것은 또 변주로 반복되어 나아가서는 종악장에 새로운 주제를 파생케하여 그것이 반복진행하고 또 템포나 음형을 변주하여 이 모티프로서 전 악장을 일관하게 하는 것이다. 이 주동기는 후고 리만도 지적한 바와 같이 베토벤의 "비창"소나타의 서주 주제와 같은 모티프에 의한 것으로 더군다나 "비창적"이라는 표제까지 똑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러나 이 표제는 작곡자의 동생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의 제안에 의해 초고(草稿)의 표지에 적어 넣었다 한다. 특별히 경이적인 콘트라스트를 나타내어 전 악장에 중요성을 주는 것은 제2주제(Andante D장조)로, 폭이 있고 힘차며, 애수가 있고 위무에 차 있으며, 환희에 들뜬 찬가와도 같다. 차이코프스키의 선율 중에서도 가장 애호되고 있는 것의 하나이다. 이 주제는 목관에 의한 리드미컬한 악상을 사이에 두고 반복 고양되다가 파곳의 독주로 쓸쓸하게 자취를 감춘다.그리고는 기다렸다는듯이 전개부로 들어가는데,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폭풍우같은 악상이 전개되고 금관악기의 요란한 포효를 섞어 소나타 형식의 전개부가 가지는 극적인 매력을 충분히 맛보게 한다.
이 격렬한 기분을 지닌 채 재현부로 들어가서 덮어씌우듯이 제1주제가 재현되어 듣는 사람을 비탄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만다. 이윽고 안단테로 바뀌는데 슬프고 체념한 듯한 제2주제가 조심조심 재현되어 멋진 대조를 이룬다. 이후 종결부에서는 고조를 보임이 없이 단순한 현의 피치카토 리듬은 쓸쓸한 관(管)의 주선율을 반주하여 언제인지 모르게 조용한 종지를 한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2악장
◎제 2악장 (Allegro con grazia D장조 5/4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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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3악장
◎제 3악장 (Allegro molto vivace G장조 4/4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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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창의에 의한 절묘한 중간악장으로서, 제2악장과는 구성이 새롭다는 점에서 좋은 대조를 이룬다. 즉, 음악적으로 골자(骨字)를 이루는 것은 쾌적하기 이를데 없는 4/4박자의 행진곡주제이지만, 질풍처럼 간단없이 유동하는 경쾌한 세잇단음표의 스타카토음형이 여기에 뒤엉켜서 요정의 춤을 생각케하는 스케르쪼의 성격을 동시에 나타낸 것이다.
먼저 스케르쪼 주제는 12/8박자로서 우선 바이올린으로 연주되지만, 이윽고 분명 4/4박자 행진곡 주제의 단편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중간적인 악상을 사이에 두고 스케르쪼와 행진곡의 악상이 번갈아 나타나고 팀파니의 강타와 심벌즈의 울림속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는 행진곡 주제의 단편이 겹쳐지면서 곡상은 강렬한 코다를 향해서 나아간다. 4개의 악장 중 유일하게 찬연한 종지를 하는 악장으로, 차이코프스키의 탁월한 기법이 백열적인 효과를 올리는 악장이라고 보여진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finale (part one)
◎제 4악장 (Adagio lamentoso b단조 3/4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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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마지막 탄식의 노래이며 애가(哀歌)이다."비창"의 이름에 적합할 정도로 비통한 정서를 띤 악장으로 교향곡의 종악장으로서는 드문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 펜을 달리면서 "진혼곡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고 호소하듯, 울부짖는 아다지오의 주제는 현의 강주로 시작되는데, 제1주제는 비통한 인상을 주면서 반복되고 이윽고 투티의 fortissimo로 고조된 뒤 pianissimo로 떨어진다.
이 부분이 반복되고 음계적으로 하강하는 파곳의 독주를 거쳐 애절하기 이를 데 없는 안단테의 제2주제로 이행하고있다.현으로 연주되는 제2주제는 큰 아치를 그리며 반복되고 화성의 두께를 나타내어 흐느끼면서 정점을 구축, 또다시 절망적으로 하강하여 사라진다. 제1주제가 엑센트를 강화해서 재현된 후, 강렬하게 고뇌하듯이 발전하고 고조된 뒤 사라지면 탐탐(징)이 공허하게 울리고 금관이 절망적인 소리를 내며 코다로 들어간다. 여기에서는 제2주제가 비통하게 울리고 피치카토의 여운을 남기며 쓸쓸하게 사라진다. 작곡자의 갑작스런 최후를 암시하는 듯 비통하고 우울한 수수께끼 같은 악장이다.
2010년 2월 5일 금요일
지역에 사는 게이들의 Life style 설문 조사
한국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게이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게이들의 손으로 제작하는 ‘게이 컬쳐 가이드북’ 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진행 의도는 이 ‘게이 컬쳐 가이드북’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게이문화와 게이 예술에 대한 소개와 현시대 한국 게이들의 진솔한 문화와 생각을 담아보고자 기획했다고 한다.
아울러 한국 게이 커뮤니티,게이 문화의 역사에 비해 초보 게이들을 위해 체계적으로 게이 커뮤니티와 한국의 게이 문화에 대해 정리된 자료가 미비하여 현개 개별적으로 산재해 있는 게이 문화 관련 정보들을 수집, 취재, 편집하여 한국 게이문화의 현주소를 가늠해 봄과 동시에 초보 게이들을 위한 정보책자로 활용코자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게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고,더 나아가 일반 서점 유통을 목표로 한 정식 출판물 제작과 가이드 북 내용을 친구사이 홈페이지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매우 뜻깊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지역에 사는 게이들의 생활/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설문으로 통계를 위한 간략한 배경 질문 몇 가지가 내 구글 메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이 전라도 광주이고 지난 몇 차례 친구사이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점이 작용해서 그런 듯 싶다.원래는 담당과 만나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서면 형식으로 진행이 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직접 얼굴 마주보고 진행이 되는 것보다는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답변을 할 수 있으니 나에겐 이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설문은 무기명으로 진행되며,답변한 내용은 책의 집필을 위한 자료로만 활용 할 뿐,조사 내용이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신상 정보 질문만 빼놓고는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이 없을 듯 해서 여기에 올리고자 한다.갠적으론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말한 것이라 다소 객관적인 부분이 결여되는 점 미리 언급을 하니 무리한 태클은 사양하는 바이다.
그럼 질문과 답변 내용은 이렇다
길어서 접었으니 궁금하면 보고 다시 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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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에 사는 게이들의 Life style 설문 조사
1> 지금 거주하는 곳? 그 곳에서 얼마나 지냈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현재 69년생 마흔 둘이며 형제자매에 장남이고 전라도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서울로 상경하여 2~30대를 보내다 30대 말쯤 전라도 광주로 내려와서 살고 있습니다.직업은 생략.
2>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특징이 있다면?
예전에 비해 각종 문화·예술 행사도 다채롭게 열려 다양한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많아져서 굳이 다른 곳을 가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어서 좋은듯 합니다.사람들도 예전 폐쇄적인 사고 방식에서 개방적인 오픈 마인드로 점차 바뀌어져 가고 있고요.
허나 여전히 성적 소수자에게 향하는 시선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겉으론 이해한 척 하는지 모르겠지만 속 마음은 빗장을 굳게 닫아 걸고 있어서 이런 분위기에 게이임을 커밍했다간 친구 관계나 사회 생활 하는데 상당한 곤경에 처할 수 있는 건 자명한 일이고요.일례를 들자면 서울 지역의 대학 교내 성소수자 모임이나 동아리가 있어 오픈하고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전라도 지역의 대학교에서 성소수자 모임을 오픈하고 커뮤니티를 하는 것은 극심한 진통에 시달리고 온전한 정신으로 학교 생활 하기가 힘들어 지리라는 걸 누구보다 학생들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다른 이들이 게이임을 의식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위장을 하고 다닙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도 이러할진 대 사회 생활하는 성인들은 오직 할까요? 그래서 모든 성인 게이들이 그렇지만 내 자신도 일상사와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행동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처세술로 살아가고 있답니다.일상생활에서는 성실하고 매너 좋고 남자답고 마음씨 곱고 그리고 상식적이고 건전하고 합리적인 인간관계요.그런 일상 사의 모습을 결단코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행동으로 연장 시키지는 않죠. 주변에 그 어느 누가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행동을 이해하겠어요?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지만 고지식한 가치관과 사고는 여전히 팽배해 있는 시골 도시이기 때문이죠.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 정체성을 은폐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늘 긴장하게 되는 현실이 한편으론 역겹기도 해서 어쩔땐 모든 걸 정리하고 환경이 나은 외국으로 가 고픈 맘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방의 대도시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이나 성인들이 즐길 거리가 모여있는 곳은 몇 곳으로 한정이 되어 있어 그 곳을 몇 시간 배회하다 보면 자신의 지인들을 한 두 명이라도 꼭 만날 정도로 현저히 좁습니다.그렇기에 레즈비언이 아닌 게이 남성이 비슷한 나이 대면 모르겠지만 나이 차가 있는 애인을 만나서 그런 곳에서 길거리 데이트를 즐긴다는 건 어지간한 마음으론 하기가 힘들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에 지인들이 시선이 닿지 않는 그런 곳과 또 자신의 생활 공간과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그리고 서울처럼 종로 일대나 이태원 일대처럼 일반인들의 시선에 꺼리낌 없이 게이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소위 말하면 열악하고 음침하기 이를데 없는 몇 군데 가라오케,게이빠,시설이 최악인 게이 휴게텔과 게이 사우나 한 곳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무리 열악하고 음침하기 이를 데 없을지라도 그 공간은 광주 지역의 게이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공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 곳은 게이들이 그들의 성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교류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함으로 인한 중압감과 피곤함을 풀고 해소하는 공간으로서 기성세대의 게이들이 만들고 지켜낸 소중한 공간이겠죠.만약에 그 공간이라도 없었다면 시골 도시 광주에서 게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 까라는 생각도 나름 해봅니다.
3>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기 시작한 때는 언제? 어떻게? 당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국민학생 5학년 시절부터 여자애보다는 남자애한테 관심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사춘기가 지나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군복무를 할 때도 이성보다는 귀염틱한 동성 친구 혹은 친척 사촌에게 향하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그때는 자연스럽고 짙은 우정 관계로만 정리를 했고,단순한 호기심으로 애써 치부해버렸죠.
그후 22살 풋풋한 초반에 서울에 올라와 퇴계로에서 120CC 오토바이로 가스 배달을 하는 가게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물론 입에 풀칠하고자 한 것도 있었지만 학창 시절부터 동경하는 바이크를 몹시도 타고파서 그런 이유가 컸었죠.그 당시 무겁고 힘든 가스 배달이기에 다른 배달보다는 벌이가 좋았읍니다.그래서 그런지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위 발라당 까진 날라리끼가 있는 아이들이 손쉽게 일을 했다가 자주 그만두곤 하였죠.
그렇게 난 가게 구석 쪽방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숙식을 하며 힘든 가스 배달을 하게 되었는데 한 곳에서 2년 가까이 있었죠.그러면서 자연스레 동종에 종사하는 또래들과 동생들을 알게 되어 친분을 유지하게 되었고요.헌데 거기서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낸 두살 아래인 귀염틱한 동생에게 동생 이상의 감정이 유발되어 고민에 빠지면서 이게 뭔가 하는 의심이 내 자신에게 점차 들기 시작했답니다.자라면서도 이성에게 느껴야 할 감정을 또 동성의 동생에게 느껴졌으니 가히 심각할만 하죠.
그러나 동성애자 누구나 그랬듯이 어릴 때부터 이성애만이 옳다고 교육을 받아왔었고... 아니 그것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었죠.가정이든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당연하고 자명한 것이었으니까요.가끔 영화나 소설책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던 '호모' '동성애'라는 단어는 혐오, 정신병자, 별종 인간, 변태, 죄악 등의 단어와 같이 등장해서 그것은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었죠.
그래서 난 그때도 완강히 거부하고 아닐거라고 강하게 부정을 하였죠.어릴때도 학창시절에도 군복무때도그랬지만 당시엔 지금처럼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었고 또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못했으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죠.(기억을 더듬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아이를 만나서 알고 지낸게 5년 정도 되었던 거 같은데 그 당시 그 아이는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는데 그 아이곁에서 사귀는 여자 친구를 전혀 보지 못했다.확신할 순 없지만 그 아이도 아마 게이 성향이 있었던 듯 하다.만일 그 아이가 게이가 맞다면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날 배달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얼핏 퇴계로에 있는 극장과 종로 탑골 공원을 가면 호모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종로는 솔직히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가게에서 가까운 퇴계로의 그 극장 주위를 한동안 배회하고 다니다 급기야는 묘한 호기심과 충동으로 용기를 내어 표를 끊고 드디어 떨리는 마음과 부푼 가슴,두려움을 간직한 채 그 곳을 방문했답니다.
그러나 야릇한 눈길,무표정한 얼굴,끼 가득한 몸짓의 40~50대 어른들이 극장 통로에 서 있고 화장실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걸 접했는데 막상 접하고 보니 그들은 웬지 나와 다른 딴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이질감이 느껴져 반가움이 아닌 두려움과 충격으로 지레 겁을 먹고 오줌이 마려워도 감히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좌석에 웅크리듯 앉아 있다가 영화 스크린에 투사되기 시작한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이내 뛰쳐 나와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날 밤부터 극장에서 본 그 남자들이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몸서리쳐지는 복장을 하고 무표정한 얼굴과 쾽한 눈빛으로 시커만 꼬챙이와 시퍼렇고 커다란 낫을 들고 나타나 나를 죽일듯이 쫒아오는 무시 무시한 꿈을 꾸게 되어 가위에 심하게 눌려서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기도 하고 혹시나 그런 꿈을 또 꿀까봐 잠을 설치기도 하였읍니다.너무 무서웠죠.그래서 그 충격과 절망감으로 말미암아 아마도 동성애의 생각을 한동안 확 달아나게 만든 거 같아요.
그 이후 24살 뜨거운 여름이 시작될 즈음 배달일을 그만두고 구로 공단에 있는 고향 친구네 단칸 월셋방에서 얹혀 살면서 두 살 위 고향 형 따라 집 짓는 공사장에 잡부(노가대)일을 하게 되었죠.주말에는 친구 고향 마을 형동생들이 자주 놀러와 어울리며 놀았는데 그 중에 3살 어린 후배에게 관심이 갔답니다.그러나 내면 깊숙한 곳은 여전히 강하게 부정을 해서 그때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죠.
그러던 주말엔가 목욕을 할려고 구로공단역 앞 사우나를 가게 되었죠.목욕을 하고 졸려서 어두컴컴한 휴게실에서 잤는데 시간이 좀 지나 글쎄 묘한 느낌이 들어 살며시 눈을 떠보니 어떤 남자가 옆에 바짝 누워서 내 거기를 만지고 있었던 거에요.순간 몸이 얼어붙듯 바짝 긴장이 돼어 당황을 했지만 그러나 거부를 하지 않았어요.마치 그런 행위를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이 파르르 떨었고,그런 반응에 그 남자는 더욱 밀착해서 적극적으로 탐닉을 하고,끌어 안기도 하고 그리고 오랄을 하고...행위가 끝난 후에 그 남자는 몸을 씻으러 가고 뒤이어 나도 씻은 후에 사우나를 나왔죠.
학창시절 호기심에 친구나 사촌과 할때 느낌과는 차원이 틀린 오묘하고 몹시도 흥분된 기분이었고 충격적이라 너무 정신이 없었죠.근데 몸을 씻고 나갈려고 옷을 입을 적에 반대편에서 그 남자가 야릇한 눈길로 연신 흘깃 흘깃 쳐다 보는데 그때 비로서 정신이 번쩍 드는거에요.그 남자는 40대 초 쯤 되어 보이는 아담한 체구에 좋은 인상을 가졌으나 무표정한 얼굴과 야릇한 눈길은 예전 극장에서 봤던 서 있는 남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웬지 정말 싫었어요.그래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눈길을 피했고 강하게 외면을 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분이 네 다섯 걸음 유지를 하고 계속 내 뒤를 따라옴에 내면 깊숙한 곳에 강한 부정이 솟구쳐 올라와 주위 시선이 괜히 의식이 되고 또 이 광경을 아는 사람이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돌아서서 그 남자분에게 인상을 쓰고 욕을 해댔읍니다."씨발놈아!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정상이란 말이야" 하며 소리치곤 도망 가다시피 냅다 뛰었읍니다.두려웠죠.한참 뒤에 돌아보니 따라오지는 않더군요.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엔 그 사우나를 갈 수도 없었고 한동안 그 사우나 주위를 피해서 다니기도 했고,목욕을 할때면 멀리 떨어진 다른 목욕탕으로 갔었다는...참 어처구니 없는 생각과 행동이었지만 그땐 그럴수 밖에 없었어요.그런데 그 남자의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나고 야릇한 흥분에 젖어 몸이 반응을 하면서 이젠 정말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내 자신이 그 혐오스런 '변태 호모였구나' 하는 의심을요.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심한 절망감에 빠졌죠.
일상사를 방해할 정도로 고민에 빠졌지만 근데 너무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했읍니다.그냥 단지 몸만 반응하는 정도..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사랑은 이성과 하는 것이다라는.그리곤 그 손길의 흥분을 경험코자 틈만 나면 여러 사우나를 들락거리며 몸을 맡겼고,그러다 스물 다섯살 즈음에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근처에서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와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편안한 사이로 발전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 그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귀자는 적극적인 대쉬를 해왔지만 그땐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죠.그래서 연락을 끊고 3개월여 동안 멀리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허나 그에게 향하는 감정이 진심임을 깨닫고 나서 결국은 그와 사귀게 되고..그 이후로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 들이고 인정을 하기 시작하였읍니다.그래도 한편으론 끈임없이 늘 확인을 하는건 계속 되었지요.이성애 감정을요.제발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히 원하면서 말이죠.
4> 커밍아웃을 했나요? 했다면 어느 정도까지? 커밍아웃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서울에 살적에 고향 깨복쟁이 친구 한 명과 광주에선 작년 5월쯤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한살 위 형에게 했고요.그리고 가족중엔 같이 사는 남동생만 우연히 알게 되었지요.
고향 친구나 형은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이고 사람에 대한 훈훈한 정과 배려에 남달랐던 사람들로 늘 감동을 시켰던지라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따뜻히 안아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죠.그리고 제 자신 커밍아웃 할려고 마음먹기까지 그네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 아닌척하며 매번 알아봤을테고.그렇다해도 내 성정체성을 밝히는 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워요.
더욱이 커밍아웃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내 존재가 다시 시작되는 거라서 커밍아웃후에도 그네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이전처럼 계속 좋은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런지에 대한 수십번 아니 수천,수만번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드디어 용기를 갖고 말을 하게 되죠.하지만 막상 면전에 대고 입을 떼려고 해도 '난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해...동성애자야'라는 그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죽을 죄를 고백하듯 식은 땀이 흐르고 온몸을 파르르 떨며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사연을 꺼내는 고통의 시간 십여 분 그리고 나의 오감을 집중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그네들의 얼굴 표정과 입에서 떨어지는 말들을 보고 듣는 시간 십여 분은 꼭 빛과 어둠의 경계선을 살얼음 걷는 듯한 느낌이었죠.
"쉽지 않는 결정이었을 텐데 나를 믿고 고백을 해줘서 정말 고마워" 와 더불어 "근데 내 옆구리는 찌르지 마라" 하며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그네들의 말을 듣는 순간 그제서야 긴 어둠의 끝에서 빛으로 나온 사람처럼 평안해지고 안정감을 되찾았지요.그 이후 그네들은 이전처럼 친밀하게 똑같이 대해준건 물론이고 나에 대한 배려심이 한층 더 깊어졌으며 내 자신도 그네들을 대하는 맘이 더 진실 되어지고 애틋해졌죠.
그리고 남동생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할 때 놀러왔다가 그 당시 얼마동안 사귀다 헤어진 아이가 집착한 나머지 집에 찾아와 혼자 있는 친동생이 내가 만나는 사람인줄 오해하고 얘기를 하게 되는 바람에 알게 되었지만 무조건 딱 잡아떼고 얼버무리고 넘겼는데,광주에선 내 방 컴퓨터에 블로그와 싸이 홈피를 접속한 상태로 켜둔 체 밖에 나가는 바람에 동생이 전원를 끄다가 보게 되어 확실히 알게 되버렸죠.
근데 남동생은 너무도 이상하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더군요.그냥 그러려니 하는거에요.한편으론 알아버린게 오히려 잘됐구나 하는 안도감과 또 한편으론 피를 나눈 형제가 맞을까 하는 정말 무심한 동생이라고 생각했죠.그래서 나도 모르게 동생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에 과민 반응을 보이며 마음의 벽을 쌓아놓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답니다.근데 최근에 동생 절친중 커밍아웃한 나와 같은 동성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물론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아이였고요.그 말을 듣고 내 자신이 참 우스워지고 한심스러워져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지금까지 동생은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배려를 한 건데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끙끙거리며 앓고 있었던거죠.어쩐지 예전에 사귀다 헤어져 한참 힘들어 할적에 오히려 날 위로를 해주고 이해를 해주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되려 동생이 이상스럽다 느꼈다 했어요.혹시 동생도 이쪽이 아닐거라는 엉뚱한 생각을요.왜냐하면 틈만 나면 독신으로 살고 싶다고 그러고 그런데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는 걸 듣지도 보지도 못했거든요.근데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죠.누가 동생이고 형인지...참 소심한 형이에요.그쵸?
5> 커밍아웃,게이 친구 만나기,연애 등을 하는데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있다면?
커밍아웃의 어려움과 불편함은 앞서 말했던 2~4번 답변을 참고하면 되겠고요.
게이 친구 만나기에 관해서는 예전 포스팅(http://nalrari.textcube.com/108)에도 언급을 하였지만 40대가 되어서야 깨닫고 다음 이반 모임 카페나 동성애인권단체 '친구사이' 혹은 이반시티에 친구 찾기 글도 올려보는 등 내 딴에 무던히 노력을 하였지만 이 나이에 진정 마음이 통하고 서로 존중해 줄 수 있는 편한 게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연인을 사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걸 실감 하였읍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이 친구라 함은 순도 99.9% 아니 100%의 게이로 양성애자(바이)도 아닌 또 이성애자와 결혼하여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서로에게 아픔을 안겨주는 유부 게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 팩터에 게이임을 자각하고 평생을 게이로 살고자 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친구사이'엔 동갑 또래가 없고,한 두살 터울이라 해도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기에 일시에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는 게 어렵고,하물며 이반 모임 카페라던가 이반 시티에선 순도 100%의 게이가 드물더군요.혹시라도 있으면 친구는 그냥 친구일뿐인데 육체적인 관계도 같이 원하는 가치관이 나와는 다른 게이도 적지 않게 있어서 꽤 실망을 했답니다.어느 한쪽에서 부담을 주면 결국 그 관계는 깨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이치인데 말이죠.
연인을 사귀는 것은 아직까지 큰 어려움이 없는 듯 해요.그렇다고 내가 잘난게 아니고 외로움을 좀처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끊임없이 사귀고자 하는 노력 덕분에 그런 듯 해요.내가 진정 원하는 이상형은 사실 찾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고요.그래서 내가 원하는 기준에서 벗어난다 해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게 잘 웃는 그리고 상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나 배려심이 있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대쉬를 하게 되는거 같아요.
그렇다고 나도 사람(?)인데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겠죠.^^ 왜냐하면 외모가 어느 정도 끌려야 그 다음 단계로 진전이 되는거니까요.그리고 연애를 할적엔 고지식한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지역이든 행동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감수를 해야겠죠.그래서 당연히 일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요.
길거리에서 키스는 물론이고 손을 잡고 걷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하고,찻집이나 식당에서 차나 밥을 먹을때도 눈치를 봐야 하고,심지어는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모텔에 간다해도 될 수 있으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시선이 따갑지 않은 무인 모텔을 이용하게 되는 등..한편으론 무인 모텔도 감시용 카메라가 있지만 우리에겐 그런 장소라도 있다는 게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그외엔 연애를 할 적에 별 어려움은 없는 듯 해요.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자기 검열을 스스로 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게이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좀 대담해지고 아랑곳 하지 않는건 없지 않아 있는거 같아요.여기에 비교해서 그렇지만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을요.근데 연인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데 그다지 어렵지 않는데 커밍아웃은 이제 두 번 했지만 하면 할수록 두려워지고 꺼려지게 됩니다.
6> 자신이 게이임을 인식하고 커밍아웃하는 데 있어서 지역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지역적인 특징이 많다고 볼 수 있읍니다.특히 시골에서 태어난 게이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입니다.저 역시 태어난 고향이 큰 도시가 아니고 시골 동네인지라 웬만하면 한 집 건너에 친인척이라는 혈연으로 얽혀 있고 씨족으로 설켜 있어 남의 일을 남 같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남의 말을 예사로 하기 마련이라 입소문이 셉니다.시골 동네의 '발 없는 말'은 천리 길도 금방 간다잖아요.아마도 손바닥만한 시골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모든 소식은 사람들의 입심을 타고 인터넷보다 빠르게 전파될 겁니다.
외가댁 혹은 친가댁 친척들과 그리고 부모님과 저를 포함한 모든 형제들이 시골을 벗어나 생활을 하고 있을지언정 선산에 모셔둔 조상님들이 거기에 있고 또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잘못 커밍아웃을 하여 아우팅을 당하게 된다면 사생활 보호가 안되는 시골에선 삽시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거란 건 말하나 마나입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 결국엔 가장 큰 불이익은 부모님께 돌아온다는 게 문제인거죠.고지식한 부모님들인데 그런 말을 듣는다면 어찌 되겠나요? 내 자신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게 무슨 죽을 죄 지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게이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게이보다는 커밍아웃이 더더욱 힘들 듯 싶군요.특히 3~40대가 지나서야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하는 게이는 더더욱 그렇고요.물론 어렸을 적에 성정체성을 오픈한 게이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7> 게이 커뮤니티에 나가고 있나요? 언제부터?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는지?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술을 마시는 걸 원체 좋아하지 않아서 이반시티나 이반 모임 카페에서 번개 모임이 주로 술과 연관되어 있어서 솔직히 관심이 가질 않았읍니다.미술 전시 관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시 관람이나 혹은 그외 문화적인 모임이었다면 갔겠죠.그래서 게이바도 잘 가지 않았고요.서울에서도 그랬지만 2년 4개월 광주 생활에서도 예전 사겼던 파트너 게이 친구들을 게이바에서 주로 만났기에 덩달아 따라서 간게 한 두 차례뿐.그리곤 단 한 번도 가질 않았지요.
이반 모임 카페도 최근 몇 개월전에 가입해서 그저 온라인 활동만 하지 오프라인 활동은 하지 않았습니다.목적이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진실된 친구를 만나기 위한거라서 그외 모임이 있어도 참여치 않았습니다.그런데다 전라도 지역 모임은 거의 없다시피 하더군요.설령 있다고 해도 나이대가 2~30대가 주를 이루는지라 40대인 난 웬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할 듯 싶어서 솔직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요.
꼭 '친구사이' 가 아닐지라도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어디든 오래전부터 참여하고픈 마음이 있었어요.왜냐하면 다른 모임보다는 인권운동단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게이들은 오픈 마인드일 것이고 성정체성이 확실히 확립된 인증된 사람들이라 알아서 나쁠건 없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죠.
그렇다해도 처음에 문 두드리는 게 여간 쉽지 않았죠.또 모든 인권운동단체가 서울 지역에 모여 있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요.사이트 온라인 회원 가입을 해놓고도 그저 눈팅만 1년 했고요.용기내서 오프 모임을 참석한 것도 최근 5개월 전 부터 한 달에 한번씩 하는 정모에 몇 번인게 고작이에요.
그래서 게이 커뮤니티에 자주 나간다고 볼 수 없겠죠.
8> 게이 커뮤니티에서 주로 하는 일은?
7번 답변에서 말했다시피 슬프게도 전혀 없습니다.
9> 애인(친구)은 주로 어떻게 만나나요? 애인(친구)을 만나는 방법은?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구야홈 동성애 강좌중 "게이 커뮤니티(만남)에 대해" 란 글을 가져와 단락을 임의로 바꿔서 인용하겠다.
..........동성애자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활성화된 건 불과 몇 년전 부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각 인권단체를 비롯해서 인터넷을 통한 카페 활성화, 철저히 독과점 혜택을 누리는 게이들의 포털 사이트인 이반시티 사이트,채팅을 통한 수많은 모임과 미팅 주선,각 대학의 모임,상업적인 동성애 잡지의 발간,게이빠들의 고객의 취향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로의 전환 등 상당한 발전를 하면서 한층 더 성숙되었다.
이러한 모임등으로 인해 기존의 게이 극장,게이빠,게이 사우나,터미널,공원 등등 음성적이고 열악한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불가능했던 동성애에 대한 성정체성을 비롯해서 동성애와 관련된 정보나 지식들을 제공해주고,성 행위 지향적인 분위기를 탈피하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함으로서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하여 긍정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그 불과 몇 년전은 동성애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과 공간이 극장이나 게이빠 혹은 사우나,터미널,공원 등으로 한정되어 있고,그 공간 자체도 숨겨진 형태였다.모든 동성애자들이 그러한 음성적인 형태의 게이 커뮤니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게이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선택의 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공간,그 방법 아니면 그 어디서도 동성애자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음성적인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고,그 숨겨짐의 특성상 성적 접촉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그러한 이유가 이성애만이 절대시 되고 동성애는 변태요, 반 사회적이요,일종의 정신병으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그 누가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할수 있겠는가?
사회가 동성애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드러나면 사회적 매장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누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라고 밝힐수 있으며, 같은 성향의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을수 있을까? 결국 동성애자들이 숨은 공간에서 음성적으로 성적인 접촉을 최우선으로 만남을 가질수 밖에 없었던 현상들은 동성애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동성애를 억압하는 이 사회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극장을 비롯한 음성적 게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첫 발을 들여놓는다.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이 갖는 마음은 자신의 성향을 나눌 사람을 발견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또다른 절망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떠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곳이 유일한 공간이니까. 많은 수의 남성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도 기존의 게이 커뮤니티를 비 동성애 사회,혹은 문화가 음성적이고 퇴폐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곳에서 자신과 성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빈번하게 만나고, 한두번의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다른 남성 동성애자들과 친교적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저는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티 이반시티를 안 지는 7년 정도 되었지요.그 전엔 위에 인용한 글처럼 24살부터 줄곧 사우나,극장,터미널,공원 등 숨은 공간에서 성적 접촉을 해왔답니다.처음엔 그 당시에는 게이들만 다니는 게이 사우나도 없었죠.일반 사우나 휴게실의 은밀하고 숨은 공간에서 나와 같은 성향을 나눌 사람을 발견하고 성적인 접촉을 하고 거기서 마음이 통하여 좀 더 발전하면 그 공간을 탈피해서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죠.
그리곤 이반시티를 알게 되면서 만남을 하고자 하는 구인글을 올리거나 올려진 구인글을 보고 연락을 취해서 만남을 갖고 서로 맘에 들면 성적인 접촉을 하거나 사랑을 나누었답니다.그러다 가끔 은밀하고 숨은 공간의 성적인 쾌락과 환희에 젖고 싶으면 음성적 게이 커뮤니티를 이용하곤 했었죠.하고 나서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지만 또 가게 되는 그러한 이유로 내 자신의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부정적이고 비관적일 수 밖에 없는 패배적이고 자기비하적인 절망에 심하게 맘을 다치고 또 다치고 했었답니다.
그리고 광주에 내려오면서는 솔직히 고백컨대 일반 사우나 S와 H 휴게실에서 서로 마음이 통해서 각각 만났고 그 이후엔 이반시티 채팅으로 만났고,이번엔 구인글을 올려서 작년 12월 중순에 만나 현재 ing랍니다.
10> 지역 게이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특징이 있다면?
위에서 말했지만 광주에 있는 게이빠는 한 두번 밖에 가보지 않아서 다는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성향의 게이들이니 분위기는 즐겁고 유쾌하고 또 시골이라 그런지 나름 정도 두텁다는 걸 느낄 수 있었읍니다.그리고 예전에 잠깐 사겼던 아이의 말을 빌리자면,다양한 나이대의 게이들이 온다는 걸 알 수 있었고,끼리끼리 단골로 와서 성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또 다른 일행들과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교류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딘 온라인 커뮤니티보다는 게이빠의 사장과 일하는 종업원 혹은 단골 게이들의 입을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어 소개팅을 통해서 만남을 갖게 되면 훨씬 수월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그런 점은 궂이 광주 지역이 아니라도 게이빠나 동호회 혹은 모임이 있는 곳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죠.
11> 현 지역에서 게이 커뮤니티와 일반 커뮤니티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현재 일반 모임으로는 고향 친구들과 정치 그리고 미술 관련 모임과 일적인 모임이 있읍니다.그런데 현 지역에서 제가 참여하는 게이 커뮤니티 모임은 아쉽게도 아직 없군요.그래서 차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12> 게이 커뮤니티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가기도 하나요? 어떤 커뮤니티? 주로 서울의 어느 지역?
종로에 있는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에 몇 번 간 거 외엔 없읍니다.
13> 서울에 있는 게이 커뮤니티에 가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궂이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에 가입해서 오프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다른 모임보다는 인권단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게이들은 긍정적인 마인드일 것이고 성정체성이 확실히 확립된 인증된 사람들이라 알아서 나쁠건 없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또 그들의 삶의 방식과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게이들의 보다 나은 인권을 위해서 투쟁하는 마음에 동화되고 싶고 그들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는 계기가 되고 싶어서요.
14> 서울과 현재 지역의 게이 커뮤니티/문화의 차이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과거엔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광주엔 이렇다할 게이 커뮤니티가 없읍니다.물론 다음 카페에서 활성화된 모임에서 지역 게시판이 있을지 모르나 40대인 내가 꺼리낌 없이 참여하게 될 커뮤니티는 보지 못한 듯 합니다.
15> 서울에 있는 게이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쉽게 자주 참여하지 못하여 그 단체의 게이들과 친목을 도모하지 못하는 거 빼곤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우선은 내 자신이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하고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하는 거니까요.
16> 서울의 게이 커뮤니티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아직 까지 특별한 게 없읍니다.다만 서울의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가 좀 더 활성화 된다면 각 지방 대도시권에 연계된 동성애 단체가 있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예를 들자면 정당의 지방 조직인 지구당처럼요.그 지구당은 정치권에서는 각종 비리와 부패의 근원 지였지만 말이죠.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겠죠.수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대표 격인 어느 한 사람은 상당한 희생을 각오 해야겠죠.